본문 바로가기
반품샵 & 당근마켓 이야기

혈압계

by 도토리의꿈 2024. 5. 1.

1

 

주말 중 당근 만남이 있어 지하철 역으로 나갔다.

매장에서 꺼내두고 전시했던 혈압계였다.

 

만나뵈니 40대 남자분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는 상태라며 억지로 퇴원을 시키셨다 했다.

집에서 혈압체크를 수시로 하다 상태가 너무 안좋아지면 병원으로 다시 모시고 오라고 했다며,

생전 처음 본 내 앞에서 주저리 주저리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누군가에게라도 자기의 불안감을 말하지 않고서는 속에 담아두기가 어려웠나보다.

짧은 시간 뭐라고 말해야 힘이 될까 싶었지만..

선뜻 떠오르는 말도, 경험도, 지혜도 없어 그저 고개만 조금 끄덕이다 돌아왔다.

 

최근 세상 누구보다 건강했던 시아버님께 뇌경색이 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소식을 듣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몇십 분을 왔다 갔다만 했다.

긴 회복을 요하는 질병이라 오늘 내일이 상태가 다르시고, 기억과 언어가 오락가락 하실 때도 있다.

기껏 한달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으나 가족 중 한사람의 무너짐이 나에게도 많은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슬프고 안타까운 불편함들은 있지만..

나 개인으로는, 관계에 대해, 삶에 대해 조금 성숙해지고 돌아보는 시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처음 겪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이 일어날 것이다.

철이 든다는건 얄궂게도 죽을 때까지 안 끝나는가보다.

 

부디 오늘 만난 그분의 혈압계가 쓰일 때마다,

걱정보다는 안심의 수치로..

누구에게나 끝이 정해진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앞에서라도,

조금 더 충분한 아버님과의 시간을 갖을 수 있으시기를 기도해본다. 

'반품샵 & 당근마켓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석을 뺏긴 페레로로쉐 초콜릿  (0) 2024.05.16
코스트코 반품샵 이야기  (0) 2024.05.10
캣맘  (0) 2024.04.10